고급유 세팅된 차량에 일반유를 주유한다면? (부제 – 노킹 발생의 원리)

– 이 글은 2014년 7월 11일 이글루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서비스 종료로 옮겨 온 글입니다

 

최근 몇년 동안 꾸준히 수입차 점유율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고급유를 필요로 하는 차량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수입차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의 경우 배기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출력을 내기위해 엔진을 고급유에 맞춰 설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인지 자동차 관련 게시판을 둘러보면 종종 고급유 기준으로 설계된 차량에 비싼 고급유 대신 상대적을 저렴한 일반유를 주유해도 괜찮은지 질문하는 글들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었는데, 웹 서핑을 하다가 제 생각하기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대답을 발견했기에 자동차 관련 전공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기술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 질문에 답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급유를 기준으로 설계된 엔진에 일반유를 사용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노킹(knocking)의 발생입니다. 노킹이 발생한다고 당장 엔진이 망가지지는 않지만 노킹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엔진의 내구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먼저 노킹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살펴보기 아래와 같이 그림을 한 번 그려봤습니다. 그림은 가솔린 엔진의 압축과 폭발 행정을 나타낸 것인데, 일상적인 경우에 엔진은 피스톤이 상사점에 도달하기 전에 점화플러그의 스파크를 튀겨줍니다. (그림에서 1 지점) 피스톤이 상사점에 도달 했을 때 점화하지 않는 이유는 스파크에 의한 발화가 혼합기 전체로 전파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지요. 1 지점은 보통 크랭크 회전각 기준으로 상사점에서 12도~20도 전이라고 합니다. 그림에서 2지점은 실린더 내부의 압력이 최대가 되는 지점인데 엔진의 rpm이나 온도등에 상관없고 연소실 내부의 형상에 의해서 최적의 지점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위에서 링크를 건 원문에 의하면 대략 상사점에서 크랭크 회전각 기준으로 14도 정도 이후가 된다고 합니다. 노킹은 주로 2 지점의 근처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폭발 행정에서는 혼합기의 연소가 점화플러그로 부터 동심원이 퍼져나가듯이 실린더 내부로 퍼져나가야 하는데, 이때 연소가 된 부분이 팽창을 하면서 아직 연소가 되지 못한 부분의 혼합기를 압축을 하게 됩니다. 이때 아직 연소가 되지 못한 부분의 압력과 온도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 버리게 되면 연소가 된 부분에서 연소가 되지 못한 부분으로 화염이 옮겨가면서 순차적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연소가 되지 않은 홉합기 부분에서 연료가 국지적인 폭발을 일으키게 되고 이 때문에 엔진에 원하지 않는 충격을 주는 것이 노킹이라고 합니다. 노킹을 해결 하려면 점화 플러그의 점화 시점을 1번 지점에서 약간 미루면 됩니다. 아래 그림의 지연 점화 과정을 보시면 정상 점화에 비해 점화를 늦게 했기 때문에 2번 지점 근처에서 연소가 진행중인 혼합기의 부피가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되고 연소되지 않은 혼합기는 보다 적은 압력과 낮은 온도 상태에 있게 됩니다.

 

 

이제 노킹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았으니 고급유를 기준으로 설계된 엔진에 일반유를 넣을 경우 왜 노킹이 발생하는지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고급유는 일반유에 비해 옥탄가가 높은 연료를 말하는데, 옥탄가가 높다는 뜻은 보다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도 연료가 자체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급유를 기준으로 설계된 엔진은 일반유 엔진에 비해 높은 압축비를 사용하는 관계로 윗 그림의 2번 지점 근처에서 아직 연소가 되지 않은 부분의 혼합기가 일반유가 자연 발화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계 보다 높은 온도와 압력에 노출되기 때문에 폭발 행정을 진행하는 중에 노킹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점화플러그의 점화 시기를 지연하는 방향으로 ECU를 조정해야 합니다.

여기 까지 읽으신 독자분들은 고급유를 기준으로 설계된 엔진에 일반유를 넣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고급유로 판매되고 있는 기름들 사이에도 옥탄가의 편차가 있고 차량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유를 넣는 경우도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어 차량 제조사들은 낮은 옥탄가의 연료를 사용하더라도 엔진의 동작에 문제가 없도록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엔진에 노킹센서가 탑재되는데, 제가 알기로는 90년대 부터 판매되는 거의 모든 차량에 노킹 센서가 적용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노킹 센서의 동작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노킹센서는 주로 피에조 소자를 이용해서 엔진의 폭발 진동을 전압으로 바꿔 주는데 피에조 센서의 공명 주파수를 노킹이 일어날 때의 진동수에 (대략 7KHz) 맞추면 노킹이 발생할 경우 정해진 진폭 이상의 신호가 발생 하기 때문에 노킹의 발생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원본 출처 – INPUT SENSORS – Autoshop 101의 32페이지, (첨삭 추가)

 

노킹이 발생을 하게 되면 엔진의 ECU는 노킹을 방지하기 위해 점화 시점을 지연 시키게 됩니다. 윗 그림의 아래쪽 그래프를 보시면 노킹이 발생할 때 점화 시점을 지연시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점화 시점을 지연시키면 노킹의 발생을 방지할 수는 있지만 원래 의도된 엔진 동작의 최적점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엔진이 작동하기 때문에 연비와 출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해외 리뷰사이트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살펴보면 차량 마다 편차가 있습니다만 고급유 엔진에 일반유를 사용했을 경우 대략 10% 이하의 연비/출력 저하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제 부터는 고급유 엔진에 일반유를 주유하는 것에 대해 저의 개인적인 의견 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고급유 사양의 차에 일반유를 넣어도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엔진의 장기적인 내구성을 고려하면 고급유가 좋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CU가 얼마나 자주 점화 시점을 조정하는지가 궁금해서 자료를 좀 더 찾아 보았는데, 아래 사진의 벤츠 M119 엔진의 노킹 센서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M119 엔진은 90년대 벤츠의 E클래스와 SL에 탑재되던 V8 엔진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엔진의 회전수에 따라 다르지만 몇 번의 (a few) 점화마다 노킹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노킹이 일어나면 점화 시점을 2.3도씩 지연 시키고 노킹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다시 엔진 동작의 최적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0.75도씩 점화시점을 땡겨 본다고 합니다. 분당 수천 rpm의 회전수를 고려하면 1초 정도의 시간안에 연료에 맞는 점화 시점이 정해지고 거의 2~3초 이내에 한번 이상 다시 점화시점을 땡기는 것을 시도한다는 뜻입니다. 고급유 엔진에 일반유를 주유한다면 약하긴 하지만 길어야 2~3초 이내에 몇 번씩의 (a few) 노킹이 발생한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그 정도의 빈도의 노킹으로는 엔진의 내구성에 큰 문제가 없으니 대부분의 제조사에서는 고급유를 ‘필수’ 대신에 ‘권장’ 한다고 매뉴얼에 표시하고 있겠습니다만 정말 차를 오래 탈 생각이라면 고급유 엔진에 일반유 주유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원본 출처 – 1989-2001 Mercedes-Benz SL R129 – Four valve Engine on the 500 SL …

 

1. 고급유에 세팅된 차에 일반유 주유는 괜찮은지?

->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2. 고급유, 일반유를 바꿔 주유 했을 때 ECU 리셋이 필요한지?

-> 필요 없습니다. 길어야 수초 내에 점화 시점이 조정됩니다.

3. 고급유 차량에 일반유 주유시 연비/출력 저하?

-> 엔진이 설계된 최적점에서 동작하지 못하므로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그 양이 크지는 않습니다.

4. 고급유와 일반유를 혼합주유 하면?

-> 일반유 보다는 낫지만 고급유 보다는 떨어지는 출력/연비를 얻을겁니다.

5. 일반유 엔진에 고급유를 주유하면?

-> 출력상의 이점은 없지만 엔진의 이상으로 노킹이 발생하고 있을 경우 노킹을 줄이는데 도움은 됩니다.

(다만 원인의 해결이 아닌 증상만 막는 방법입니다.)

 

이상입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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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1. 훈훈훈 댓글:

    잘 읽었습니다
    공학적으로 잘쓰셔서 공감도 되고 상당히 정확한 정보같습니다
    저는 현재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타고 다닙니다
    이전 차량도 g80 3.3 터보를 타면서 고급유 일반유 큰 차이를 못느껴서 혼유 했다가
    해당 차량으로 넘어오고 고급유 일반유 안따져가며 넣다보니
    확실하게 알게된 차이가 있더라구요

    감각이야 사람마다 달라서 제가 정답이라 확언 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 일반유 고급유 넣을떄 차이가 너무 극명하게 납니다
    제가 예민한 부분도 있겠지만
    일반유를 넣었을때 엔진 소음 및 떨림이 아주 심하고
    시동이 조금 늦게 걸립니다

    하지만 고급유를 넣고 운행을 하면

    시동 이상무 엔진떨림 및 소음 감소
    내 차가 이렇게 조용했엇나?
    생각이 들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납니다

    기분탓이 아니라 운행을 하면서 그날 그날 차량컨디션이 다를때마다
    전날 기억을 돌아보면
    고급유를 넣었을때
    일반유를 넣었을떄
    이렇게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시선을 고정해놓고 맞춘게아닌
    체감으로 느낀 결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옥탄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괜히 제조사에서 권장을 한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체감 하고
    이렇게 잘 풀어서 설명해준 글을 읽으니
    제 추측이 맹신이 아닌 과학적 확신이 되는거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골수공돌이 댓글:

      변변찮은 글인데 긴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고급유 사양의 인피니티 G25를 몰았던 적이 있는데, 고급유 일반유의 차이는 확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양현각 댓글:

    요새 고급유 관련 근거 없는 루머만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고로 현대 n 차량들은 고급유임이 인식되면 터보차저에서 최대 부스트압(1.0->1.3bar)을 높이는 방식으로도 출력과 토크를 높입니다. 아마 점화 시기도 같이 조정될 걸로 예상이 됩니다. 그런데 이 고급유를 인식시키기 위한 주행패턴이 정해져있는데(110kph 이상에서 크루즈 5분 이상 등), 한국 도로에서는 달성이 어려운 조건이라… 고급유 기껏 넣어놓고 일반유 출력으로 타고 다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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